전쟁 사극은 신의 한 수인가

스타일리시한 팩션 사극의 등장

의무감에서 해야 하는 일은 뭐든지 간에 쉽게 지겨워지고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지친 심신을 위무하고 자존감을 북돋아주는 취미나 특기에 관련된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 의료원 책자에 글 쓰는 일도 날이 갈수록 그렇지만(?), 역사는 확실히 그렇다. 학창시절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범위가 달라서 지엽적인 시대별 특성에 집중해야 하는, 말하자면 숲보다는 나무만 보아야 했기에 시험이 끝나면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곤 했다. 그 결과 기억에 소환되는 역사란 조선시대로 한정되었고 이전 고조선, 삼국시대 역사는 긴가민가하며, 수업시간이 모자라 근현대역사는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어 졸업 후 비공식적으로 알음알음 접한 내용이 주가 되어버린 괴리감이 발생했다. 국사책 뒤쪽은 항상 새것처럼 손때가 묻지 않았다.

국내 영화 제작자들에게 사극은 아직까지도 레드오션인 듯하다. 특히 연휴를 겨냥한 대목에는 외세의 침략에 의한 전란을 맞이하여 국가존망의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낸 영웅들의 서사를 다룬 영화, 예를들면 <명량(2014)>이 상한가를 치기도 했다.

넓은 의미에서 역사를 서술한 사극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일제시대, 6.25 전쟁, 광주 민주화운동, 최근의 연평대전, 그리고 얼마전 최초 제작된 6.29 선언과 관련된 1987년의 민중항거 등은 모두 최근 부각되기 시작한 시대정신을 가미하여 버무려낸 이른 바 지난 역사에 대한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 좀 떨어진 시대극은 고증과 관련된 검증 시비, 정사와 야사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한 역사 해석의 애매한 포지셔닝, 악인으로 찍혔던 어느 누군가의 후손들에 의해 가끔은 문제를 야기하지만 대체로 얼마간의 픽션을 가미하기 때문에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위 ‘국뽕’이라 칭해지는 일련의 영화들은 영화관의 어둠이 걷히는 시점까지도 관객에게 일말의 숙제도 남기지 않고 여백없이 꽉 들어찬 과포화된 사상을 최근의 상황과 접목하여 대한국민의 자긍심을 찜찜하게 주입시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어쨌든 이러한 사극 붐은 대한민국 정부가 실제로 해결하지 못하는 최근의 민감한, 그리고 치욕적인 사안을 대신 완결시키는, 잊혀진 영웅들의 대리만족으로 보는 시각이 적절할 듯싶다.

최근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안시성(2018)>은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먼저 서사의 무대가 흔히 보던 조선시대가 아닌 전인미답의 고구려까지 역주행을 하고, 안시성의 성주는 당시의 정사에는 나오지도 않던, 조선시대 야사에 등장하던 양만춘이란 알쏭달쏭한 인물이란 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견주려면 겸양지덕으로 충만한 국내의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던 역사관에 내로남불의 뚝심있는 대항마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광개토대왕, 장수왕이 활보했던 광활한 만주벌판 이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오래된 희원이던 고구려의 기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안시성의 실체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만주 봉천성 어디쯤의 영성자산성이란 곳이 유력하다고 한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조카인 보장왕을 옹립한 후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는데 이때 당나라는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신라의 파트너가 되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된다.

야심가인 당태종 이세민과 건곤일척의 전투를 벌이게 된 연개소문은 휘하의 귀족들을 불러모으지만 양만춘이란 인물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개모성, 요동성까지 함락당한 고구려는 주필산 전투에서 대패한 후 안시성에서 최후의 공성전을 펼치게 되는데, 양만춘은 오히려 연개소문이 보낸 암살자로 말미암아 안팎의 고비를 맞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픽션을 써내려 간다.

안시성의 비주얼을 담당한 남동근 촬영감독은 수천 편의 뮤직비디오와 광고촬영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81년 MTV가 선보였던 현란한 시각적 충격은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한 임팩트를 주어야 하는 뮤직비디오와 광고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 이다. 남 감독은 <조작된 도시(2017)>에서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속도감과 음영의 차이를 이용한 현란하고 기발한 카메라 워크를 선보였다. 안시성에서도 한국 전쟁 사극의 또 다른 레퍼런스를 만들었는데 디지털 작업(블루 스크린)에만 몰두하여 어색하던 이전의 전쟁신(몹신)과 달리 스카이워커(사축 와이어캠)와 로봇암을 이용하여 피와 땀이 뒤범벅된 사실감 있는 아날로그적인 근접 촬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2005)>이 구현한 압도적 규모감과 가이 리치의 <킹 아서: 제왕의 검(2017)>에서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스타일을 차용하여 스스로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 대군이 충돌하는 몹신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디지털화된 수많은 병사들이 따로따로 주변 지형지물을 인지하여 장애물을 피하거나 상대와 싸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개별적 동선을 획득했다. 그 결과 안시성의 전투 장면은 근경 실사와 원경의 CG가 균형을 이루게 되어 한국영화 전투 장면의 신기원을 이루게 되었다. 보디빌더가 즐비하게 나왔던 잭 스나이더의 <300(2006)>에 비해 모자라지 않은 훌륭하게 완성된 스펙터클임에 틀림없다.

풍성한 전투에 비해 등장인물의 캐릭터 설정, 서사의 갈등, 불안감의 정점, 갈등의 해소는 왠지 맥이 빠진 느낌이다. 실제 안시성의 공성전 전투가 당나라의 일반 사다리, ‘운제’라 불리는 견고한 사다리 차, 그리고 진흙으로 만든 공성탑 순으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게임에서 레벨을 하나씩 올려 그 때마다 한 단계씩 더 강한 상대를 만나는 식의 이전 일본 만화영화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풍첩,1993)>을 연상시킨다.

진흙 공성탑은 실제로는 스스로 주저앉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름없는 민초들에 의한 폭발로 인해 아슬아슬한 시간에 무너지게 된다. 이름없는 영웅은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법이고 영화에는 빠지지 않는 MSG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었고 발전되었음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인들(신녀와 백하)은 모두 감정에 휩싸여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한계를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누가 봐도 무모한 행위를 거침없이 해내고 스스로 산화한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전쟁영화는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토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이런 소모의 방식에 남다른 연기력과 출신이 아이돌 그룹이라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과 트랜스포머, 쥬라기공원 등에서 상영 내내 과도한 CG로 고문 받던 두 눈은 주몽의 신궁에서 뿜어져 나온 화살촉이 그토록 먼 거리를 날아가 이세민의 눈에 박히는 순간 픽션임을 알면서도 통쾌하고 개운한 느낌이 앞서게 되는 건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Daum 영화 소개

안시성(2018) | 킹덤 오브 헤븐(2005) | 킹 아서: 제왕의 검(2017) |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통첩,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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