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라는 장소의 불편함을 말하다

병원을 떠도는 영혼들

나는 병원이 싫다. 병원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무표정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 트집 잡을 건수가 없나 눈을 돌리며 화낼 준비를 하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두렵다. 가운을 걸치면 그들의 눈동자는 내 얼굴과 명찰을 번갈아 가며 바쁘게 검색하는 것 같다. 그들의 의심에 가득 찬 눈매는 마치 80년대 거리에서 불시검문을 하던 사복경찰의 그것, 혹은 수년 전 24시간 편의점에서 껌을 살 때 슬쩍 호주머니에 꼬불친 물건을 내놓으라던 알바생의 그것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맹세코 그런 일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병원에 오면 상쾌하지 않다. 이곳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입할 봉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한지 올해로 20여 년이지만 이런 답답한 느낌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나중에 이곳을 떠날 때까지도 여름장마 같은 텁텁함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듣는 순간 이런 정착되지 못한 불안정함이 그대로 표현된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면서 찰나의 순간에 이 둘이 뒤바뀌는 곳이며, 대부분의 한국인은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치료를 하는 의사들도 나빠지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는데, 당사자인 환자와 보호자는 얼마나 궁금하고 한편 억울할까. 미스터리 투성인 병원은 그래서 도시괴담의 온상이기도 하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미니시리즈 <킹덤(1994)>에서 병원을 배회하던 유령처럼 모든 병원에는 온갖 사연과 원한을 가진 영혼들이 떠도는 것 같다. 병원이 싫고, 병원에 오면 까닭없이 갑갑한 이유는 바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영적인 카르마가 켜켜이 쌓인 탓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심근염으로 10년 이내 죽을 확률이 50%이기 때문에 하루 속히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젊은 남자가 있다. 클레이는 백만장자이고 어머니가 반대한 아름다운 여인과 수술 전날 결혼하였으며 어머니가 추천한 의사가 아닌, 의료 소송이 몇 건 걸려있는 낚시 친구 흉부외과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는다. 마취는 시작되었지만 클레이의 의식은 그대로 유지가 되는 마취 중 각성이 발생하여 그는 수술의 전 과정 동안 고통을 겪으며 어느 순간 유체이탈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다른 공간을 오가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음모에 대하여 알게 된다. 이식 거부반응으로 죽음에 직면하지만 어머니의 희생으로 다시 깨어나게 되는 클레이.

<어웨이크(2007)>는 매우 드문 현상인 마취 중 각성이라는 소재를 빌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비윤리적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사랑하는 신부)의 배신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는 스릴러 영화이다. 수술실 경험이 없는 관객들은 영화 속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수술과 무관한 농담, 잡담 등에 대하여 혼란을 겪을 지도 모르나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서브라임(2007)>은 표면적으로는 의료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백인 중년남성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저에는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로 표출되는 주인공의 불안증과 공포감에서 비롯된 상상을 구현한 영화이다. 간단한 내시경 이후 다리가 썩고 흑인에게 팔다리가 잘리며 믿었던 가족들로부터 배신당한 주인공은 끝내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주인공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일상생활 속의 막연한 불안감과 의심에서 비롯된 상상 속의 일이다. 한 나약한 가장이 항상 지니던 의심, 의료시술에 대한 막연한 부정에 대한 잘못된 상상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되는 과정을 그려내지만 영화가 끝난 후 제시되었던 상징들(인종차별, 최후의 만찬, 동성연애, 부인의 간음, 간호사와의 썸씽 등)은 이후에도 한참을 곱씹어야만 한다.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부도 직전의 낡은 병원의 경영진은 급기야 병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환자를 받지만 의사들이 떠나는 시점에서 제대로 된 치료가 될 리 없다. 의료사고가 일어나고 의료진은 이를 감추는데 급급하게 된다. 전신화상을 입은 환자의 응급처치 중에 염화칼슘을 염화칼륨으로 잘못 주사하여 환자가 사망하지만 부검해도 원인을 모를 것이라 판단한 의사는 사체를 좀 더 빨리 부패시키기 위해 병실에 난로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응급실 앞에 놓인 구급대의 침대 위 환자는 이미 죽었으며 소위 괴질에 걸려 온몸의 내장이 녹아가고 있다. 일본 영화 <감염(2004)>은 실제로 감염이 발생(Outbreak)하여 온 병원과 의료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품고있던 두려움, 죄책감, 불안감, 공포들이 뭉쳐서 만들어 낸 환상으로 보인다. 영화는 환자의 생명은 최우선으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처치에 대한 과오는 어떤 식으로든 고쳐져야 한다고 조용히 협박하는 듯하다.

흉부외과 전문의 스티븐은 음주 후 수술로 환자를 죽게 만든다. 이 사고 이전 완벽했던 그의 가족은 어느 날 집으로 찾아 온 16세 소년에 의해 조금씩 균열이 발생한다. 소년은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아들로서 죄책감에 친절히 대하는 스티븐에게 점점 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된다. “내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어야 균형이 맞겠죠? 첫 단계는 사지가 마비되고, 두 번째는 거식증에 걸리고, 세 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고, 결국엔 죽게 될 겁니다. 누굴 죽일지 한 사람을 선택하세요. 아니면 다 죽을 테니까요.” <킬링디어(2017)>는 기괴한 전작 <더 랍스터(2015)>를 감독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으로서 속죄(성스러운 사슴 죽이기)라는 그리스 신화 속의 상징을 표제로 이용하여 인간의 이기심을 심판하는 부조리극이자 블랙코미디로 정의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소년의 신탁에 의해 아들과 딸에게 실제로 형벌이 가해지면서 배우들의 감정이 거세 된 연극 풍의 마른 연기로 인해 관객들은 오롯이 극의 진행에 몰입하게 되면서 순수한 불쾌함이 선사하는 희열을 맛보게 된다.

응급실에서 보호자(남편)의 팔뚝에 새긴 문신을 보고 환자가 구타당한 것으로 오인하여 지주막하출혈 환자를 놓친 여의사는 결국 면허정지를 당한다.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오늘 내일 하고 병원에서는 장기이식을 권유하면서, 보호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반창꼬(2012)>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스스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고 다짐하지만 만에 하나 생각지 못했던 사소한 틈이 발생하여 벌어질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와 이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한 신경외과 의사의 회한에 찬 기시적인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 올 때마다 갑갑한 모양이다.

Daum 영화 소개 보기

어웨이크(2007)  |  반창꼬(2012)  |  킬링디어(2017)  |  감염(2004)  |  어웨이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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