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영화 속 자동차 이야기

PPL로 , 조연으로 , 주연으로 빛나는 영화속 자동차

경찰의 추격을 뒤로 한 채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절벽으로 질주하는 <델마와 루이스(1991)>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로드무비의 백미다. 그러나 가장 오래 잔상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여자 주인공보다는 자동차 그 자체였다. 후방의 기다란 테일핀을 사용한 바디 프레임과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테일램프, ‘F’사의 하늘색 2인승 컨버터블인 ‘선더버드’는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자유의 갈망에 대한 환유 그 자체였다.

자동차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동수단으로 그치거나 혹은 미장센을 구성하는 배경 일부로 역할이 국한된다. 점점 더 다양한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현상은 자동차가 단지 사람을 옮기는 수단을 넘어서,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의 하나로 읽힌다. 최근 텔레비전 속 자동차 PPL(Product Placement)을 통한 무의식적인 시청자 세뇌는 무차별적이다. ‘도깨비’의 공유가 타고 나온 이탈리아 ‘M’사의 SUV 르반떼(지중해의 바람이란 뜻)는 캐나다 퀘벡의 아름다운 단풍과 어우러져 단순한 바람이 아닌 태풍 같은 강력한 인상을 남겼고, ‘효리네 민박’과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는 스웨덴 ‘V’사 SUV인 XC90이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할리우드의 PPL 원칙은 “Not blatant, but subtle(노골적이지 않게, 그러나 자연스럽고 미묘하게)”란 말로 함축된다. 하지만 근래의 미국영화 들은 자동차를 위해 제작된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예는 주인공이 사람 아닌 자동차인 <트랜스포머> 시리즈이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범블비(‘C’사의 카마로)는 영화 출연 이후, 최고의 머슬카(실제로는 포니카)인 머스탱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는 슈퍼카가 존재하는 법. 마블 시리즈와 독일 ‘A’사와의 돈독한 관계는 현재 진행형으로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가 운전한 R8은 천재적이고 과감한 첨단 재벌 이미지에 걸맞은 10기통 사륜구동의 3.3초 제로백을 가진 슈퍼카로서 디젤게이트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A’사가 국내에서 다시 판매를 시작한 최초의 자동차이기도 하다.

윌 스미스가 <아이로봇(2004)>에서 타고 나왔던 바퀴와 사이드 미러가 없는 자동차 역시 ‘A’사의 RSQ란 미래지향적인 콘셉트카였는데 향후 수소연료를 탑재해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듯 자동차 회사들에게 있어 영화는 하나의 쇼 케이스인 셈이다.

DC코믹스의 주인공들은 하늘로 날거나(슈퍼맨, 사이보그), 물속으로 다니거나(아쿠아맨), 순간이동을 하기 때문에(플래시) 자동차를 탈 일이 없을 듯한데, 배트맨은 좀 다르다. 망토를 휘날리며 업무용 관용차인 텀블러에 승차할 때를 제외하고 민간인 브루스 웨인으로 살 때는 좀 더 평범한(?) 차를 탄다. 이탈리아 슈퍼카인 ‘L’사의 무르시엘라고를 <다크나이트(2008)> 때까지 사용했고 이 차가 단종되자 아벤타도르로 교체했다. 마블의 천하무적 전직 신경외과 의사 <닥터 스트레인지(2016)>가 자동차 사고를 겪고 자신의 망가진 두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가게되는 계기를 만든 자동차 역시 ‘L’사의 우라칸 쿠페다.

반세기 넘어 시리즈가 계속된 007에는 많은 본드카가 등장했지만 <007 골드핑거(1964)>부터 등장한 영국 ‘A’사의 DB5는 주인공의 냉철하고도 매력적인 느낌과 잘 어울리며 랩 범퍼, 기관총, 사출시트, 연막 분사기 등의 다양한 기능 등이 탑재되어 제임스 본드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하다. 최근 <007 스펙터(2015)>에는 오로지 영화를 위해 10대만 제작된 DB10 모델이 나왔는데 여기서 이전 본드카로 나왔던 ‘J’사의 자동차는 악당의 차로 나와 폭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단 헌트가 나오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독일의 ‘B’사가 막강한 서포터 역할을 한다. 전기로 움직이는 스포츠카로서 전면 유리를 통째로 HUD로 사용하는 첨단 자동차 i8은 걸윙도어 하나만으로도 주차난에 신음하는 한국민에게 엄청난 희망을 선사했다. 또한 비엔나 거리를 후진으로 질주하고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가며 뒤집어져도 주인공은 죽지 않는 이른바 공포의 M 시리즈인 M3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탈리안 잡(2003)>에서는 배신자에 대한 복수로 그의 금괴를 탈취하는 데 가장 적절한 크기의 자동차인 미니 3대를 사용한다. 그토록 작은 자동차가 보이는 속도감, 지하철 선로 위를 달리는 데 특화된 안성맞춤형 크기, 200마력이 되지 않음에도 금괴를 싣고도 끄떡없는 힘 등은 덩치가 다가 아니라는 세상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본 아이덴티티(2002)>에서 파리 시내 계단을 전속력으로 내려가고 구석구석을 누비는 장면에 나온 자동차도 미니(메이페어)였는데, 도심 전문 운전용으로 만들어진 예쁘기만 한 자동차로 이러한 추격 장면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백 투 더 퓨처(1985)>에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번개를 연료로 움직이던 자동차가 기억나는가. 드로리안 DMC-12는 전세계적으로 1만 대도 팔리지 않았던 차였는데 국내 최초 독자개발 모델인 포니를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쥬지아로의 작품으로 알려지며 최근 재출시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속물 변호사가 회개해가는 과정을 그린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2011)>는 미국 대통령의 의전 자동차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인데 최근에 출시된 콘티넨탈 광고에는 영화에 출연했던 매튜 맥커너히가 등장한다. 미국식의 넉넉한 럭셔리를 표방함에 있어 링컨만한 브랜드는 없을 듯하다.

자동차가 주인공인 영화라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빠질 수 없다. 주인공 폴 워커는 몇 년 전 독일 ‘P’사의 카레라 GT를 운전하다가 과속사고로 사망하여 안타까움을 남겼는데, 단 3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불꽃처럼 살다간 제임스 딘도 ‘P’사의 550스파이더를 운전하다가 사망하여 ‘P’사의 자동차와 스타의 죽음은 마치 운명처럼 보인다. 폴 워커는 영화에서 일본 자동차를 애용하였는데 만화 ‘이니셜 D’에서 ‘T’사의 86과 쌍벽을 이루던 란에보란 별명의 일본 ‘M’사 랜서 에볼루션, ‘N’사의 유명한 스카이라인 GT-R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공공도로 주행이 아닌 랠리 운전 전용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임을 생각할 때 대중성을 벗어나 소수의 마니아층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저력을 통감할 수 있다.

1980년 5월의 뜨거웠던 광주는 <택시운전사(2017)>에서 45년의 브리사를 통해 재현되었다. 모나지 않은 둥그스름한 외형과 따뜻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느낌의 녹색 자동차는 연기와 총소리로 뒤덮여 생사를 오가던 공간에서도 전진, 후진을 반복하며 택시기사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려던 주인공 만섭에게 안성맞춤인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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