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19금 영화감독에 대한 단상

비현실적 시도가 꽃피는 대리만족의 발현지, 스크린

2008년 5월호부터 시작하여 격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한양대학교의료원 매거진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에 원고를 게재한 지 어느덧 56회차가 되었다. ‘테마 무비’의 주제는 매 호 달랐는데, 이슈가 되는 사회, 정치문제, 또는 문화현상(자살, 지구종말론, 상실의 시대와 치유, 디지털 노마드와 아날로그 감성, 인공지능, 촛불집회, YOLO 등), 나름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 방송, 음악들(미드의 재발견, 웹툰영화, 응답하라 2013, 컬트영화, 뮤지컬, 공포영화, 다큐멘터리,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속 음악, SF영화, 한국영화의 불편한 진실 등), 그도 아니면 지면을 빌어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영화 속 악당, 패션과 정체성, 미녀, 벗은 몸, 의사들, 아버지와 나, 스승과 제자, 첫사랑, 여주인공, 사랑에 대하여, 호접몽, 한 박자 쉬어가기 등)이 대상이 되었다. 독자 타깃의 다양성을 고려해 일반적인 성인이 편안히 읽을 수 있도록 순화하여 작성했다. 켜켜이 쌓인 매거진이 활자화된 연도가 10년이 된 지금 산만해져 버린 생각들에 대해 정리를 해야 할 적절한 때임을 느낀다.

첫 회는 거창하였다. ‘삼부작 영화 명불허전, 혹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지금은 타계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 세 편에 대한 겁 없는 소고였다. 곱씹어볼수록 심오하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 쉽지않은 영화들이었기에 당시의 얕은 해석이 지금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마지막 한 줄 “스탠리 큐브릭은 테크놀로지(촬영기법, 음악, 편집)를 통해 광기의 언어를 만드는 휴머니즘 게임의 조련사”라는 평가는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단순 오락이 아닌 탐구와 제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의 지나칠 만큼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인지 미완성 유고작이 되어버린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수차례 본 이후에도 헛헛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영화 선택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나의 경우는 일단 감독이 우선이다. 물론 장 자크 아노나 오손 웰즈 처럼 데뷔작에서 보였던 천재성을 차후의 작품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일찍 쇠락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을 유지 혹은 발전시켜나가기 때문이다. 관객들을 향한 지휘자로서의 연출가를 말함은 물론이다.

감독은 은연중에 고유한 연출 색채와 방향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들을 묶어 장르화 시킬 수 있다. 예컨대 좀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창조하여 정치적 함의를 부여한 조지 로메로나 ‘트랜스포머’를 통해 거대 로봇 실사 영화를 만들어 낸 마이클 베이, 어둡고 잔인한 일본 서브컬처의 선구자인 미이케 다카시, 소노 시온 같은 감독들은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만 보아도 무의식적인 데자뷰에 의해 강렬한 감상욕구를 느끼게 된다.

물론 작품마다 광폭으로 폭렬하는 리들리 스콧 같은 감독도 있다. 영화의 변태적인 상상력은 무난한 12세 관람가 영화가 아닌, 제한상영을 할 수 밖에 없는 특정한 장르의 비주류 영화에서 엄청난 빛을 발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는 하드고어 스플래쉬 영화들인데, 필자는 ‘반지의 제왕’, ‘호빗’을 감독한 피터 잭슨의 초기작인 <고무인간의 최후(1987)>, <데드 얼라이브(1992)>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스파이더맨’으로 변절한 샘 레이미의 초기작 <이블데드(1981)> 시리즈를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하고는 한동안 숲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또한 스튜어트 고든, 브라이언 유즈나 콤비의 <좀비오(리애니메이터, 1985)> 시리즈를 보면서 의대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이들이 호러영화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준 선생님이라면 이태리 하드고어의 계승자인 다리오 아르젠토나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 같은 사람들은 좀 더 디테일한 과외 선생님에 빗대어서 해석 가능하다. 거기다가 조지 로메로, 존 카펜터, 클라이브 바커, 허쉘 고든 루이스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터넷 강의 선생님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저예산의 조악한 특수효과라도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공포영화가 제작 가능함을 입증한 비주류 영화계의 스승들이다.

공포영화의 대표격인 드라큘라 영화를 보면 여성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아 흡혈하는 의례로서 표식이 등장한다. 다양한 공포영화들은 에로틱한 표현기법을 동원하여 공포와 성애가 혼합된 또 하나의 교배장르(하드고어와 포르노의 합성어인 고르노가 대표적)를 만들었다. 폭력과 노출, 성행위의 한계를 오가는 표현의 마지노선은 헤수스 프랑코, 장 롤린, 러스 메이어 같은 B급 영화감독들에 의해 자유롭게 정의되었다. 이 들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 흡혈귀, 좀비, 식인종, 마약, 범죄자, 근친상간 등의 소재를 이용한 비도덕적이고 몽환적인 가상세계를 통해 개연성은 약하지만 강력한 이미지의 수렴을 꾀하며 언더그라운드의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제 자체를 줄거리보다는 사람(여인)의 육체에 집중시켰던 이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틴토 브라스는 지중해의 태양처럼 빛나면서 건강한 이탈리아 여인을 가식없이 표현한다는 목표 아래 비슷한 영화들을 줄기차게 찍었다. <칼리귤라(1979)>, <살롱 키티(1976)> 같은 영화는 그나마 어느 정도 역사의식이 있는 영화로 분류된다. 중학교 3학년 당시 거금 1,000원을 내고 동네 만홧가게에서 친구들과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보았던 <엠마뉴엘(1974)>이라는 영화는 탄식과 후회가 점철된 희대의 명작(?)이었다.

1970년대 발흥하였던 미국의 포르노에 대항하여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던 패션 포르노의 선구자 쥐스트 자캥의 작품들은 이내 수그러들었지만 엄청난 아류를 만들어내어 국내(OO부인 시리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막스 페카스, 발레리안 보로브츠크, 조 다마토 등이 유럽에서 인체와 사물에 대해 지속적인 표현과 풍자를 시도한 반면, 미국에서는 래들리 메츠거, 존 워터스, 잘만 킹 등이 각각 다른 방식(수채화를 그리듯이, 비주류의 주류화_컬트, 세련된 영상처리)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

아쉽게도 위의 감독들 영화는 정상적인 경로로는 손에 넣기 어려워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만 감상이 가능하다. 손사래를 치겠지만 영화의 감상 목적 중에 으뜸은 훔쳐보기(voyeurism)와 이를 통한 대리만족(substitute behavior)에 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할 환상, 욕망, 갈등은 영화 속 배우들에 의해 대신 채워지게 된다. 수위 높은 공포와 폭력, 살인, 그리고 노출을 포함한 19금 영화로 한정 지어 이번 호를 채운 이유는 물밑에 침잠한 금단의 영역에 대한 언급 역시 필요하리라 보는 건강한 일탈의 역할을 믿기 때문이다.